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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도 는 일본도 와 비교하면 어떤가?
작성자 고려전통기술(주)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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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3-12-06 09: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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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816

#한국 #도검 #전통도검 #진검 #일본도 #조선 #도검제작 #고려도검 

나는 한국에서 고려도검제작회사 를 운영하는 문희완 입니다 .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은 강철산업이 발전해서 일본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일부 무기는 일본을 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 제철 제련기술로 만든 한국의 방위산업무기 들이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시장에 많이 수출되고 환영받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강하고

 튼튼하고 잘 잘라지고 미술적 가치가 있는 검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본의 사무라이 도검 니혼도 카타나 일본도 만 좋은줄 알고 계시죠? 맞습니다.

 일본도 품질도 좋고 디자인도 뛰어나죠 .

그런데 여러분 일본에 전통도검 제조기술을 가르켜준 나라가 어디인지 아세요.




옛날 한국 삼국시대의 백제라는 나라 입니다.

백제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면서 여러가지 문화교류를 했는데 

이때가 1500여년전이고 이때 도검제작기술을 전해주었습니다 .





그런데 많은 시간이 가면서 근세에는 일본이 전통도검기술이 한국을 앞섰습니다 .

왜냐하면 섬나라인 일본은 천황이 있지만 지방분권 실제 권한을 가진 각 지역의 쇼군들이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자기 지역을 지키기 위해 사무라이는 양성하고

검도를 가르키고 많은 양의 카타나를 여기저기 다수의 지역에서

대를 이어 생산하게 되어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많은 지역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일본 검도를 오래동안 수련한 고단자 사범으로서 검도대회 참가를 위해 

일본을 자주 출입하면서 일본도의 우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도검제작을 가르키는 전문교육기관이 있고

한 집안에서 수십대 도검을 만드는 집안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품질과 예술성이 뛰어날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뛰어난 일본도 제작기술을 배우기 위해 

나의 아들이 13년전 25살때 일본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한국 속담에 자식은 서울로 말을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통과 축척된 도검기술제작기술 을 가진 나라 일본

마침 일본도검 제작기술 일본 인간문화재 2위인 마츠바 이치로 선세이 도검대장장이에게 

아들을 유학 보낼수가 있었어요.




일본 돈 환율이 가장 높을때 보내서 힘들었지만 

후쿠오카에서 일본어 1년 배우고 수십대 걸쳐 대를 이어

일본도 도검을 만들어 온 미야자키 휴가이 시의 마츠바 이치로 선생의

고향 시골에서 4년간 도검을 기술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서 일본에 유학한 도검 대장장이를 좋아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도

있지만 앞선기술은 인정 할 줄도 알고 배울 줄도 알아야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백제에게 배웠지만 제자가 스승 보다도 잘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도검제작기법을 전해준 나라가 옛 한국 백제 였지만 일본은 굉장한 발전을 하였습니다.

나의 아들은 많은 것을 배우고 기술력이 매우 성장 하였습니다.

기술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하든지 어디서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서 

철공소 수준의 기술로 엉터리로 만든 도검을 본적도 있고 기술이 없는 자들이

tv나 유트브에 나와 진짜 전문가 행세를 하는것을 보면서 

나는 아들을 일본에 보낸 것이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저 역시 일본 검도를 배우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 중기에 조선무관 백동수가 왜군이 주둔하는 왜관 관아에 숨어들어

왜 검술을 익혀서 "무예도 보통지" 제작에 기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육군대학을 졸업한 영관 장교이며 

조선 말기 조선무관시험 장원급제 증조부가 유성현감으로

근무 중 일본 군에 항거한 문석봉 의병장의 후손입니다. 

조선의 왕비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시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의병을 모집하여 공주주둔 정규군 일본군대대와 전투를 문석봉의 후손이다 

"문석봉은 경북 현풍(玄風) 사람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최초의 봉기를 이끈 의병장이다. 




1895년 2월 공주부(公州府) 영장(營將)에 재직하면서 

일제를 이땅에서 몰아낼 것을 계획하고 관병 400여 명을 훈련시키다가 

붙잡혀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동년 음력 9월 18일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 만행에 항거하여 

충남 대덕군(大德郡) 유성(儒城)에서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기의(起義), 회덕(懷德)으로 

진군하여 군사를 모은 후 그곳 관아(官衙)를 습격하였다

[출처] 문석봉(文錫鳳, 1896.11.19~1994.09.07) 독립유공자 제2묘역 0168, 



을미의병의 효시" 문희완은 현풍사람이고 문석봉의 후손으로 

대한민국육군에 근무했고

 현재 증조부가 항거하여 전투했던 대전 유성구에서 도검 만드는 일을 한다. 

애국자의 집안의 후손이지만 앞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아들을 일본에 보냈고 

자신도 일본 검도를 배웠다. 어떨땐 왜놈의 앞잡이 라는 비난 댓글을 받은적도 있지만 

그 글을 쓰는 사람의 집안이나 본인은 국가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해보라

고 말하고 싶으나 그냥 참고 산다



꼭 말을 해야 맛은 아니다.

어쨋든 나는 아들과 같이 대를 잇는 전통도검제작 집안이 되었다. 

나의 꿈이었던 조선의 전통무기 박물관도 지었고 





정부의 산학협력 사업의 도움을 받아 공장도 초현대화 시켰다. 

노력하고 발전하여 세계시장에

우리도검의 우수성을 알리고 수출해서

외화를 많이 벌여들여서 나와 직원들이 생활 영위함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세계 시장에 우리 한국 전통도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https://youtu.be/PPyRq0mj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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